1. 첫눈 _ 하루타카

2차 썰 백업2023. 6. 26. 01:51


썰을 풀자! 일상편 보드판 도전기~

카게로우 프로젝트

하루타카 (타카네의 자각 없는 짝사랑)
약 신아야 포함




  첫눈




  “첫눈을 같이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여름 내내 더워 보이던 아야노의 목도리가 이제 제대로 보온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날이 풀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쌀쌀해졌으니 또 금방 눈이 내리겠지. 점차 가까워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탑승한 아야노가 꺼낸 말에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맞으면 어떻게 된다, 뭐 그런 말도 있었지. 나는 삐딱한 자세를 고쳐 앉고 되받아쳤다.


  “왜, 같이 맞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아뇨, 아뇨. 그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친구랑 같이 맞으면 어떻게 되려나… 조금 궁금하다고 할까. 인연이 길게 이어질까 어떨까….”


  아야노는 손을 휙휙 저었다. 그, 있잖아요? 다음 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고 싶은 친구가…. 횡설수설 말꼬리를 늘였다. 이렇게까지 당황하니 덩달아 미안해졌다. 주절주절 이어가는 말꼬리 잡기를 듣다못해 사과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아야노, 미안! 정말 미안! 나도 농담이었어. 하지만 관심 있다면 시도는 해보는 게 어때? 진짜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아야노는 농담이었다는 말에 안도하며 차분하게 돌아왔다. 조금 얼굴을 붉히고는 마주 사과해 왔다. 자기가 너무 들떠버렸다나,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놀란 걸 텐데. 말을 더 덧붙이려던 참에 타이밍 좋게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아야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교실로 돌아갔다. 아야노가 나선 문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쭉 인연이 이어지고 싶은 사람이라….

  인연? 엎드려 자던 하루카가 일어났다. 내가 중얼거리던 말을 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무슨 이야기인지 물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웠지만 지금 일어나서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편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첫눈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설명했다. ‘사랑’이 아니라 ‘인연’이 이어진다고. …이래서야 아까 전의 아야노와 별다를 게 없었다. 떳떳하지 못해 시선을 내 책상으로 돌렸다. 별일 아닌 척 어물쩍 첫눈을 같이 맞지 않겠냐고 운을 띄우니, 어린애같이 즐거워하던 목소리를 분명히 기억한다.

  첫눈 오는 날에 같이 놀자고?

  네가 바보라 정말 다행이었다. 하루카는 해맑은 표정으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다. 눈싸움도 하고 싶다는 말에 픽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그런 건 내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하루카는 경기 우승 상품을 나베로 둔다면 자기도 의욕이 솟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뉴스의 날씨 코너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낯간지럽게도 새삼 첫눈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기예보에 눈 표시가 뜨기 전날, 하루카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입원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안. 나 때문에 못 놀게 돼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몸은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던 하루카는 조금 전에 밥을 다섯 공기 해치웠지만 아직 더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평소였다면 거대하고 탄탄한 위장에 감탄했겠지만, 지금은 어찌나 안심되던지.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자니 오늘은 눈이든 비든 뭐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애꿎은 하늘만 노려보았다. 일기예보는 하필 이럴 때만 잘 맞지. 참나, 기상이변인지 변이인지 너 말이야. 이런 눈 따위 일주일 정도 미뤄버리라고. 저주하듯 염원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내가 노려보던 창밖으로는 보란 듯 하얀 눈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사람 속도 모르고 아주 퍼엉펑 내리는구나. 질렸다는 말투로 투덜거리려던 것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나를 보자마자 사과부터 내뱉던 하루카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투덜거리면 안 될 일이다. 대신 방문객용 의자에서 일어서 창가로 향했다.


  “하루카, 춥지 않아? 커튼 좀 칠게.”
  “어? 아니야, 타카네. 잠깐만. 나는….”


  옷깃이 살짝 당겨졌다. 한 손으로 커튼을 잡은 채 엉거주춤 얼어붙었다. 고개만 획 돌리고 외쳤다.


  “뭐, 뭐 하는 거야? 왜 그래?”
  “…나는 괜찮아, 타카네. 그리고 의외로 괜찮은걸. 여기에서라도 같이 눈을 보는 거.”


  커튼에서 손을 뗐다. 나는 저런 것 따위 눈앞에서 치워버리려 했는데. 이 애는 나름의 위안으로 삼았나 보다.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서있자니 하루카는 작게 웃어 보였다.


  “혼자였으면 쓸쓸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아. 타카네 덕분이야. 오늘 와줘서 고마워.”


  숨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냉랭한 공기 탓에 코끝이 찡해졌다. 한기가 들어와 속을 뒤집는 것 같았다. 날씨 때문이다. 이건.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드는 건, 전부.


  “친구가 입원했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매일 찾아와서 쓸쓸할 틈 없이 귀찮게 해줄게. 얼른 퇴원해서 놀러도 가고, 또 눈이 오면 네가 말했던 나베도 먹으러 가자.”


  이제야 환하게 웃는 하루카를 보고 마음이 놓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뭣하면 이번 눈은 연습 판, 다음 눈을 진짜 첫눈으로 하자고.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기분만은 나아졌다.

  아, 돌아가면 또 한동안은 날씨 코너를 자주 시청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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